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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의 역사

작성자 부****(ip:)

작성일 2020-12-14

조회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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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하모니카의 역사

하모니카는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사랑하고 연주하는 악기로서 제한없이 모든 곡을 연주할 있으며 리드군과 공명을 통하여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모니카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에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sheng)이라고 부르는 관악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악기는 대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불면 공명에 의해 소리가 났습니다. 18세기에 마르고 폴로가 악기를 유럽에 처음에 소개하여 알려지게 되었으며, 악기의 영향으로 풍금,아코디온,섹스폰 그리고 하모니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하모니카 형태와 특성은 1821 독일의 시계 제조공인 크리스챤 프리드리흐 루드버크 부슈만이 15개의 피치 파이프를 묶어서 한면이 4인치인 네모난 악기를 만들면서 이것을 문데올린(Mundaeoline) -독일말로 입이라는 -이라고 불렀으며, 건반없이 연주하는 최초의 악기로 전해집니다. 1825 독일의 작은 도시인 슈텐베르크시의 도로츠시겐(방직공장지대)이라는 마을에서, 한스 크리스챤 메슈빌이라는 19세된 소녀가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하모니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모니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57 마티아스 호너가 자기 아내와 두명의 직공을 데리고 650개의 하모니카를 만들어 팔면서부터입니다. 동양에서는 1850 일본에 처음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40 일본의 야마하 하모니카 합주단이 평양 YMCA에서 연주회를 가지면서 친숙한 악기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53 "대한 하모니카 협회" 발족 계기로 협회 산하 고려 하모니카단이 있었으며 80여명의 회원들이 연주회 발표회를 통하여 하모니카의 발전과 대중화를 꾀하여 왔었으나 현재는 해체되고 말았으며, 1978 이혜봉 선생이 창설한 은물결 합주단과 한국 하모니카 연맹의 발족으로 하모니카의 발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악기사로서는 유일하게 미화 하모니카 社가 질적인 성장을 보이며 하모니카의 보급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모니카의 유래

 하모니카를 날숨과 들숨으로 분다는 점에서 보면 원조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중국의 (sheng)이라는 악기라고 수가 있지만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가까운 형태의 하모니카가 만들어진 것은, 1825 독일의 한스 크리스챤 메슈넬이라는 19세의 소녀가 아코디언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 하모니카의 시초라고 있다.

 그렇지만 하모니카가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57 독일의 트로싱겐에서 마티아스 호너가 하모니카를 만들면서부터라고 있다. 그의 이름이 상호가 호너(M.Honner)회사는 세계 최대의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제조 연구업체로 발전하였고, 오늘날도 다양한 종류의 하모니카를 생산하고 있다.

 하모니카가 동양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1891 일본인 比留間賢八씨에 의해서이다. 당시의 하모니카는 장난감 정도의 것이었고, 연주용 악기로서 널리 보급된 것은 독일의 호너사로부터 하모니카를 수입하기 시작한 1907 무렵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하모니카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1928 평양고등보통학교 하모니카합주단(단장 이정식) 조직하여 활동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1935 평양 YMCA하모니카 밴드를 시작으로 1936 평양 쌘니하모니카5중주단, 1952 고려하모니카 악단(이후 대한하모니카협회 산하단체) 창단되어 활동중 1957 대한하모니카협회를 발족하여 초대 회장에 당시의 체신부 차관이었던 조응천 박사가 선출되어 협회를 이끌었다.

 이후 1959년에는 ‘사단법인 대한하모니카협회 ' 개칭, 1965년에는 공보부에 문화활동 단체로 등록하여 명실 공히 공적인 문화활동단체로서 수많은 학교, 직장, 단체에 하모니카음악을 보급하여 왔으나 1980년대 이후 협회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명맥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동안의 협회의 화려했던 공적활동이 맥을 잇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필요성을 절감하여 2 회장 최영진 선생님(초대회장 조응천 박사의 서거로 1978 취임, 대한민국 하모니카의 산증인으로 하모니카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함께 뜻을 모아 휴면상태에 있던 법인등기를 2005 4 복원하였고, 이어서 협회 이사회에서 홍정표 교수가 3 회장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다.

 또한 협회가 일시적으로 활동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모니카음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차원에서 협회와 간접적으로의 관계를 맺으면서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로서 성장 발전해온 몇몇 연주인들이 뜻을 같이 하여 1985 한국하모니카연맹(회장 이혜봉) 발족되었다. 처음에는 활동이 중단된 협회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취지에서 명칭을 ‘한국하모니카협회’ 하고 최영진 선생님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공적 단체인 사단법인으로 활동할 없게 되어 최영진선생님께서는 공적단체가 아닌 이상 명예회장의 직을 수락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협회의 맥을 잇지 못한 사적인 단체로서의 ‘한국하모니카연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록 사단법인화 되지는 못하였지만 ‘한국하모니카연맹’은 협회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하모니카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면서 폭넓은 하모니카의 보급과 지도자 양성, 각종 문화활동을 통한 국내외의 연주인들과 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결과 한동안 주춤하였던 한국의 하모니카계의 대외적 위상도 개선되었고, 급기야 협회의 초창기부터 국제교류 친선 활동의 창구이시던 최영진 선생님의 후원 하에 ‘한국하모니카연맹’을 중심으로 여러 하모니카 단체들이 소속을 가리지 않고 힘을 합쳐 국제대회인 2000 아시아태평양페스티벌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였다.

 하모니카의 지속적인 발전은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는 배경이 되어 ‘오케스트라 하모니카교육센터(원장 우미경)’와 ‘한국하모니카아카데미(회장 최광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하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국내의 하모니카공연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지속적으로 대만과의 교류를 통해 하모니카 발전에 노력하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명실상부한 전문연주인 양성을 배출하기 위해 꿈나무 하모니 키즈의 인재양성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모니카 단체의 혁신적인 활동은 우리나라 하모니카계의 장래를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사단법인대한하모니카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신 우용순 선생님, 이덕남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원로 분들의 노력과 아울러 국산하모니카 제조사인 미화악기사의 기술개발 공연지원 등은 대한민국 하모니카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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